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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아이고 우리 예쁘고 사랑스러운 대제자 녀석!
-어화둥둥 내 사랑아!
-대사형이 최고야!
-어떻게 우리 집안에 이런 복덩이가 넝쿨째 굴러들어왔대?
돌아온 소어를 향한 모용가 식구들의 호들갑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했다.
백부 모용백과 연소소는 거의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사제, 모용수는 싱글벙글 소어에게 쉴 새 없이 질문 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세가의 몇 안 되는 장로들마저 껄껄 웃으며 손수 술상을 차리기 시작했으니(모용세가는 장로부터 총관, 소총관, 소지에 이르기까지 함께 집안일을 하는데, 일꾼과 식모가 현저히 적은 까닭이다.) 소어가 얼마나 대접받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하.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땐 정말 죽을 뻔했죠. 풍토 증상에 배는 고프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잠까지 쏟아지는데, 광풍사의 대막멸살진은 무시무시하더라고요. 그렇다고 강기를 폭발시켜 와해시키자니, 북해 소공녀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으니 진퇴양난이었죠.” 시작됐다.
소어의 수다신공.

어릴 적부터 소어는 이처럼 소위, 무용담 푸는 걸 무진장 좋아했다.
현재도 지난 몇 개월간의 모험을 대서사시로 풀어내는 중이었다.
언변도 언변이거니와 몸짓, 음성, 표정까지 거의 완벽한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했으니, 세이프게임 사람들이 몰입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응?” 모용화가 호기심 잔뜩 서린 눈으로 소어를 재촉했다.
그러자,
“자! 지금부터 잘 들어. 믿기 힘든 기연을 말해줄 테니까.” 꿀꺽!
사람들의 목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귀곡산장의 지도>라고 들어봤어?” ***
이후로도 소어의 이야기는 거의 한 시진 가까이 이어졌다.

모험담의 종장인 ‘북해에서의 혼인 대소동’ 부분을 늘어놓을 때는, 눈이 거의 뒤집힐 정도로 사람들이 폭소했는데 모용백은, “허허! 북해빙궁의 궁주도 욕심이 과하구먼. 어디 감히 우리 소어를 넘봐? 소어 정도면 못 해도, 황궁의 부마(駙馬)는 되고도 남을 텐데.” 한껏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모용화가 부친을 타박했다.
“아버지! 대사형이 무슨 물건이에요? 한 사람의 인륜지대사를 두고 장사하듯 계산을 하는 건, 속물들이나 하는 짓이라고요.” 말이야 바른 말이어서, 모용백도 처음에는 대꾸하지 못했다.


그러다, 위신을 세울 생각이었는지 헛기침하며 그녀를 나무랐다.
“험! 이것아. 말이 그렇다는 게지. 누가 네 대사형을 강제로 혼인시키겠다더냐? 그리고 인륜지대사인 만큼 상대의 배경과 학식, 재산 같은 것도 따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 혼인에 큰 의미를 부과하는 것은, 단순히 남녀의 사랑을 떠나, 집안과 집안의 결속으로……” “여보오!”
‘끙… 뭔 말을 못 한다니까!’ 중언부언 길어지는 모용백의 말을 이번에는 아내 연소소가 끊어버렸다.
소어의 재밌는 모험담을 듣고 있는 와중에, 헛소리가 길어지니 짜증이 난 탓이다.
그런 모용백을 보며 소어는 백부가 참 이해심 넓고, 비권위적인 가주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문에, 모용세가가 좋았다.
무릇 무림의 세가는 수직 상하가 선명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항명조차 할 수 없지만, 모용세가는 달랐다.

일개 마당쇠가 총관을 면박하기도 했고, 딸이 아버지를 나무라기도 했으며 사형이 사제와 사매를 ‘수련’ 핑계로, 괴롭히는 일이 온상이 되어버린.
어쩌면 다소 정신 나간 가풍을 지닌 이 모용세가가.
‘나는 좋아.’ 소어에겐 어느새 안락한 ‘내 집’이 되었다.
“혼인 같은 거? 저는 생각 없습니다.” “…….”
“오직, 모용세가의 군림천하만 생각하며 달릴 거니까요.” 소어의 비장한 음성에 어찌 분위기가 무거워지는 듯했다.
하나 그 침묵의 무게를 불편하게 느끼는 이는 없었다.
‘모용세가의 군림천하.’ 그 말이 사람들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때,
“그런 까닭으로.” 소어의 눈빛과 음성이 미묘하게 변했다.
‘응?’
‘저 눈빛은?!’ 모용화와 모용수는 그 첨예한 변화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왜냐?
하루 이틀 당한 게 아니었으니까.
“지금서부터 군림천하를 위한 지옥의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 사매와 사제는 나를 따라올 수 있도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형을 돌려 연무장으로 향하는 소어.
그 뒷모습이 오늘따라 더 흉악하게 느껴진 모용화와 모용수는 대사형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지만 후폭풍이 두려워 참을 수밖에…….


“이천 오백팔십사.” “이천 오백팔십육.” “이천 오백팔십칠!” 우렁찬(?) 기합 소리가 연무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오늘 수련은 형(形) 위주의 체력 단련.
사실, 소어도 여독을 풀고 싶은 터였기에 금일 수련은 쉴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간 사매와 사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궁금하여, 나섰다. 오픈홀덤
한데, 결과는 의외였다.
-휘이익!
-휘이이이익!
내력을 끌어올리지 않은 상태에서 파천연격포를 펼치는 사매와 사제의 자세가 상당히 정돈된 것은 물론,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자식들, 그간 엄청 고생했나 보네. 이 정도로 늘었다고?’ 큰 기대는 없었다.
모용화든, 모용수든 자신처럼 끈기 있는 편은 아니었기에(지극히 소어의 주관일 뿐, 두 사람도 인내력이 대단하다) 그저 체력이 떨어지지만 않기를 바랐는데.
“이천 오백팔십팔!” “이천 오백팔십구!” “이천 육배애애액!” 수천 번, 권장을 내지르면서도 사매와 사제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다.
“강한 무공은 어디서 나온다?” “체력!”
“체력입니다, 대사형!” “완벽한 공격은 어디서 나온다?” “완벽한 자세입니다!” “정확한 자세에서 나옵니다!” 처음으로 사매와 사제과 기특한 소어였다.
하나 칭찬은 하지 않았다.

내일부턴 더욱 고도화된 체계적 수련에 돌입할 생각이었기에, 두 사람의 정신을 더욱 다잡을 필요가 있었다.
“좋아.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부턴 새로운 수련을 시작할 거야.” “휴…” 로투스홀짝
“새로운 수련이요?” “그래. 파천연격포의 자세는 잘 잡힌 셈이니, 다른 십초무적공의 형을 구분 품세로 익히고, 저녁에는 실전편에 돌입한다.” 소어의 말에 모용수가 물었다.
“실전편이요? 그건 뭡니까, 대사형.” “응. 너희 둘이 전력을 다해 내 옷깃이라도 스칠 수 있도록 노력 해보는 거야.” “그건 ‘타작’ 수련이잖아요. 새로울 거라고는…” “아니. 달라.” “네?”
“타작은 말 그대로 그냥 냅다 후드려 패서 감각과 회피 수행 능력을 길러주는 수련이지만 실전편은 그야말로 아찔한 고통이 따를 테니까.” ‘그럴 줄 알았지.’ ‘대사형… 또 뭡니까!’ 모용화와 모용수의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칭찬받기 위해 몇 달간 죽어라, 고생했는데 칭찬은커녕,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소리로 괴롭힐 궁리나 하는 대사형.
“거, 대사형! 그런 수련이 진짜 있긴 있는 거야? 그냥 즉흥적으로 지어낸 거지? 응? 우리 골려주려고. 맞지?” 모용화가 눈을 부라리며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저거 완전 귀신이네. 어떻게 알았지?!’ 소어는 뜨끔하여 내심 경악했지만 이내 철면피 신공을 발휘했다.

“날 뭘로 보고! 이건 십초무적공의 필수적 수련 방법이라고. 내 말만 들으면 고수 되는 거 금방이니까, 의심하지 않도록. 이상 금일 수련 마친다.” ‘으이구… 진짜. 또 한 번 속아준다.’ ‘대사형, 너무합니다!’ 힘없는 사매, 사제는 그렇게 또 한 번 속을 수밖에.
괜히 입방정 떨었다가 피똥 쌀까 싶어 더 이상의 반항은 꿈도 못 꾸는 두 사람이다.


늦은 밤.
모용세가 가주실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음…”
“음…”
“음…”
세 사람이 잠도 이루지 않고 골똘히 머리를 맞대고 있었던 탓이다.
“분명 좋은 일인데…” 모용백의 읊조림.
“그냥 좋은 일 정도가 아니지요. 이건 기울어가는 세가의 재정을 정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의기가 묻어나는 대총관의 음성.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요? 근데, 오늘에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소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내단. 복용시키시죠. 화아랑 수야한테.” 바로 태양화리의 내단 처분에 관한 문제로 세 사람은 고심하던 찰나였다.
“백부님. 대총관님. 잘 들어보십쇼. 내단을 갖다 팔면 확실히 엄청난 돈을 거머쥘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본 세가는 어디까지나 강호에 몸담고 있죠?” “그렇지.”
“물론입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망설일 이유가 없는 거예요. 태양화리의 내단을 사매와 사제가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까 싶었던 게 사실입니다만, 오늘 보니 무공이 엄청 늘었더군요. 제가 더 닦달하고 꽉 쥐어짜면 머지않아 일류를 넘을 수도 있습니다.” “정녕 그리 생각하느냐?” “네, 백부님. 안 되면 그냥 멱살 잡고 강제로라도 끌어올리죠, 뭐.” ‘그건 좀…’ 저건 자신의 딸을 반 죽여놓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모용백은 그렇게 느껴 찝찝했으나, 소어의 충정을 잘 알기에 차마 딴지를 걸 수 없었다.
그때.
“하나 확실히 아깝긴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일꾼, 식모들의 월봉도 지불하기 힘드 로투스바카라니까요.” 대총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보통 무림 명가의 대총관들은 자잘한 부분에 관여하지 않지만, 행정관도 따로 없는 모용세가에선 대총관이 살림살이며 예, 결산 편성이며 전부 도맡아 했기에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기지 않을 수 없었다.
“대총관님. 제가 누굽니까?” “대제자, 진 공자시죠?” “그렇죠. 제가 모용가의 대제자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다 안배를 해두었죠.” “네?!”
대총관이 놀라 물었고, 모용백은 사랑스러운 대제자가 또 무슨 떡밥을 내뱉을까 싶어, 기대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짜잔!”

두둥!
세 사람이 둘러앉은 원형 탁자에 둔탁한 무언가가 수북하게 떨어졌다.
“이… 이건?” “금원보가 아닙니까, 진 공자!” 두 사람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소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미소지었다.
“추가로 받은 의뢰대금이에요. 아깐 일부러 말씀드리지 않은 거고. 거기다, 내일 요령표국의 장 국주님을 만나면 더 받을 겁니다. 이 정도 금액만 해도 한동안은 돈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소어야! 아이고, 우리 예쁜 소어! 잘했다, 장하다, 최고다! 껄껄껄!” “허… 참. 진 공자님은 정말 알다가도 모르실 분이라니까. 대체 이 많은 돈을 어떻게!” 백부와 대총관의 얼굴이 해맑게 풀어지자 소어도 덩달아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좋아하실 필요 없어요. 큰돈이긴 하지만, 딸린 식솔이 한둘도 아니고 사매와 사제를 고수로 키우려면 약수도 상당 기간 더 제조해야 하니까요. 지금까지야 백무학관에서, ‘슬쩍’한 약재로 약수를 만들었지만, 낮에 창고 가보니 그마저도 떨어졌더라고요. 돈 들어갈 곳은 천지인데 돈 나올 구멍이 적으니. 후…” “소… 소어 너, 도둑질을……” “쉿! 백부님. 도둑질이라뇨. 그냥 좀 빌린 거예요, 하하.” 소어가 멋쩍게 웃었다.
모용백은 물론이고 대총관도 말문이 막혔지만,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뿐, 가타부타 말을 붙이진 않았다.

말해 뭐 하는가?
이미 슬쩍 해버린 것을.
하나 놀라기는 일렀다.
소어의 이어지는 발언이 점입가경인 까닭이다.
“자고로 쏟은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슬쩍한 재물은 도로 갖다 EOS파워볼 놓을 수 없다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절대! 엄금입니다. 아시죠?” 예끼! 이놈아.
그런 속담이 세상에 어디 있냐?
이 녀석이 어릴 땐 아주 그냥, 착해 빠져서 훗날 사기당하진 않을까, 걱정했더니 이 무슨…
절간에서 원시천존 찾을 놈이네!
기가 찬, 모용백의 입에서 웃음이 삐져나오던 그때.
“가주님. 진 공자! 제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뭔가?”
“뭐죠?!”
“우리 세가의 재정이 좋지 않은 것은, 바로 소득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궁세가, 사천당문, 제갈세가 등등 잘 나가는 무림 명가들은 하나 같이 사업을 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렇죠.”
“우리도 사업체를 하나 꾸리는 겁니다.” “어떤?”
“적은 돈으로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밤거리를 장악’하는 거지요!” “밤…”
“거…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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